불완전각성 센티넬 치고 박무현은 굉장히 안정된 편이었다. 첫 가이딩이 폭주의 위험때문에 점막 접촉 가이딩까지 했어야 했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만큼 그의 각성은 안정적으로 진행됐다. 자연스레 신해량의 가이딩도 손을 잡는 선에서 유지됐다. 박무현은 느슨하게 생각했다. 센티넬로서 사는 게 어떤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가이딩이란 게 이 정도라면 받을만 한데?


그리고 사고는 방심한 순간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네? 다들 병원에 갔다고요?”




한숨을 푹푹 쉬면서 들어온 서지혁이 한 말에 박무현은 깜짝 놀라 막 소독을 끝낸 통을 떨어트렸다.




“아니, 무슨……. 많이 다치셨나요? 누가 다치셨나요? 신해량 팀장님도 다친 거에요? 지혁씨만 안 다친 겁니까?”

“아, 우리 팀장은 대충 반창고 하나만 붙이면 됩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젓고 서지혁은 간략하게 이야기를 풀었다. 엔지니어 가팀이 한참 외부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떤 미친 놈이 지렁이를 근처로 몰고 왔단다. 다행히 신해량이 눈치채고 신호를 줘서 정면 충돌은 피했는데 스치는 경로조차 아니던 정상현이 지레 짐작으로 펄쩍 뛰면서 난리치다가 몸을 못 가눠 허우적대며 떠내려가기 시작했고 와중에 살겠다며 휘두르던 팔에 김재희가 같이 잡혀갔다나.




“상현이 놈은 발 좀 다쳤고 재희는 의족에 문제 생긴 거 같아 점검하느라 병원에 갔어요.”




박무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걱정보다 큰 사고는 아닌 것 처럼 들렸다. 자세한 건 봐야 알겠지만. 그런데 아까 가팀 절반이 병원에 갔다 하지 않았나? 또 누가 있지? 서지혁이 말을 이었다.




“발 질질 끌고 있는 둘을 겨우 끌고 나와서 어떤 얼간이인가 하고 알아봤더니 지난 주에 백애영에게 차인 머저리랍니다. 엿먹어 보라면서 지렁이를 몰고 덤빈 거죠. 미친 놈 아닙니까? 애영이가 그 놈 얼굴 보자마자 명치를 걷어찼어요. 마저 패려고 뛰는 걸 강부팀장님이 말린다고 잡다가…”

“…다치신 겁니까?”

“예. 애영이는 가벼운 찰과상. 부팀장님은 인대 쪽?”

“인대면 꽤 힘드실텐데요. 그래도 부상이 심각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러게 말이죠. 솔직히 전 가끔 저희 부팀장님이 팀장님보다 무섭습니다. 아니, 어떻게 애영이를 잡고 겨우 그거 밖에 안 다치지? 알고보면 그 사람도 뭔가 있는 거 아닌가 싶다니까요? 이김에 저희 팀 전수 조사해야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가팀 외부 멤버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애영은 센티넬이었다. 그런 센티넬이 화나서 움직이는 걸 말렸는데 그 정도의 부상이라면 서지혁 말마따나 멀쩡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지혁씨가 말리지 그러셨어요.”

“애영이가 절 죽일 걸요?”




안 그래도 이따가 손잡고 벌서야하는데. 서지혁이 지겹단 표정을 과장되게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이딩을 해야한단 소리구나. 박무현은 소리없이 웃었다. 처음 둘이 가팀 휴게실의 ‘벌칙 의자’라고 써 있는 곳에 나란히 앉아 세상을 저주하는 얼굴로 손을 맞잡고 있는 걸 봤을 때는 대체 뭘 하는 건가 했었더랬다. 서지혁이 백애영의 가이드라고 알려주는 신해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쩔 수 없어 하는 임시 페어’라며 둘이 입을 모아 강조했다. 그게 어찌나 합이 딱 맞던지. 박무현은 상성이 참 잘맞는구나 생각했다.




“아, 그래서 팀장님이 기다리지 마시랍니다. 그냥 팀장님 방에서 들어가 주무시고 계시면 알아서 하시겠다는데요.”

“네?”




박무현은 눈을 깜박였다. 누구 방?




“어…신해량씨 방에 가서 자라고요?”

“예. 이거 처리하려면 많이 늦을 거 같아서요. 채굴팀 놈도 엮여있고 해서.”

“하지만…주인도 없는 방에 들어가는 건 좀 그런데요. 일단 저는 문도 못 열고…….”

“선생님은 의료진이라 강제 개방 하실 수 있는데요?”

“네??”




강제 개방이라니. 문을 내가 열 수 있다고? 의외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박무현에게 서지혁이 말했다.




“모르셨습니까? 혹시 모를 의료 비상 사태 때문에 의료진은 손만 대면 다 열려요.”




그, 그렇구나. 박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치과의사도 의료진이긴 하지. 그런데 내가 비상 개방을 한다 해도 딱히 일반인보다 나은 응급처치를 할 수 있을 거 같진 않은데. 권한 반납해야하는 거 아닐까…? 이상한 고민을 또 사서 하기 시작한 박무현을 두고 서지혁은 팀장 말 전달 다했으니 자긴 퇴근한다며 손을 흔들고 나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샤워를 하고 잠옷을 갈아입은 후 자신의 방에 앉아 박무현은 고민했다. 신해량이 먼저 들어와도 된다 하긴 했지만…주인 없는 방에, 그것도 침대에 누워서 자라고? 해저기지의 숙소는 전부 1인실을 상정하고 만들었기에 침대도 1인용이다. 박무현이 침대에서 자면 필연적으로 방주인인 신해량은 바닥에 누워서 자야한다. 그건 심각한 실례 아닌가?


무엇보다 그 침대는… 박무현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아직도 그의 인생 첫 가이딩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열과 고통에 취해 몽롱한 정신은 현실과 꿈을 마구 섞어놨다. 환각이라 여기기에는 지나치게 선명한 감촉과 단편적인 이미지를 통해 키스는 했구나 정도만 확신할 뿐, 나머지는 어디부터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열에 취한 채 떠올린 환각인지 구별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침대에 또 눕기라도 하면……. 


단 한 번 들어갔던 방의 침대 위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 무섭게 그는 고개를 마구 저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털어냈다. 이상해. 완전 이상해. 악몽만 꿀 거 같다고.


그는 패드를 들어 직원창을 들여다봤다. 신해량의 이름 옆에는 여전히 일한다는 표시가 떠 있었다. 부상이 심각한 걸까? 걱정스레 다른 가팀 멤버들을 보자 전부 휴식중으로 되어 있었다. 그럼 부상은 심하지 않은데 팀장이라 관련 일을 처리 하는 걸까. 막연히 짐작하며 박무현은 시계를 봤다. 시간은 이미 밤 10시를 훌쩍 넘겼다. 신해량도 쉬고 싶을 텐데 퇴근하자마자 가이딩을 또 하고 침대도 뺏기는 건 너무하단 생각이 들어 영 망설어졌다.




“…몇 시간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틀 전 퇴근 후에 받았으니 내일 아침에 받아도 되지 않을까? 요새 꾸준히 가이딩을 받아서 그런가 그때처럼 갑작스런 피로감이나 열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혹시 몰라 그는 손으로 제 이마를 만져봤다. 아무런 열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내일 받자. 신해량도 쉬어야지. 어린 녀석이 팀장일 하랴 비밀리에 가이딩 하랴 고생하는데 잠자리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건 역시…못 할 짓이지. 박무현은 혼자 결론을 내리고 패드를 들어 신해량에게 예약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은 일하는 중일 테니까…한시간 정도 후에 도착하도록 하면 되겠지. 




[주인 없는 방을 빼앗기 죄송해 그냥 제 방에서 잡니다. 내일 아침 일찍 만나죠.^^]




메시지까지 보내자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박무현은 패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통역기를 빼 나란히 둔 뒤 침대로 꾸물꾸물 들어갔다. 폭신한 침구가 감싸는 감각을 만끽하며 그는 온 몸을 쭉 폈다가 나른하게 늘어뜨렸다. 아, 역시 눕는 게 최고야…….













신해량은 시계를 확인하고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너무 늦었다. 벌써 48시간을 훌쩍 넘긴 거 같은데. 최근의 안정성을 생각하면 별일 없을 수도 있지만, 언제 상태가 변할지 모르는게 각성 중의 센티넬이다. 가이딩을 하면서 느낀 바에 따르면 박무현은 거의 각성의 끝자락에 가까웠다. 가장 예민하게 체크해야하는 시기라 단순히 신경이 곤두선거면 좋겠지만, 이상하게 ‘감’이 좋지 않았다. 서지혁이 매번 신내림 받은 거 아니냐 놀려대고 하던 그 느낌이 그를 쿡쿡 찔러댔다.


별일 없어야 하는데. 날 듯이 방 앞에 도착한 신해량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고 문을 열었다. 불이 꺼진 실내의 어둠에 눈이 적응하기 전에 예민한 오감이 있어야 할 사람의 부재를 알렸다.




“…….”




신해량은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싶어 그는 패드를 들었다. 걷느라 바빠 무시해버린 패드의 진동은 박무현에게서 온 메시지 알림이었다. 내용을 확인하기 무섭게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발걸음을 돌렸다.













더워……. 허우적허우적 팔을 휘둘러 제 몸을 감싼 이불을 걷어 젖혔다. 체온으로 데워진 이불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한기가 들었다. 박무현은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가 이내 더워하면서 밀어냈다. 어깨와 상체 위에만 끌어당겨 덮은채 잠에 취한 정신으로 씨근거리면서 그는 뭔가 잘못 되었음을 직감했다.


감기걸렸나? 왜 이렇게 덥지? 왜 더우면서 춥지? 왜 온 몸이 잡아당기는 것처럼…




“-생님.”




낮은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박무현은 숨을 들이켰다.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들어 상대를 겨우 확인했다. 꿈일까? 신해량이 있었다. 


여기…내 방 아니었나? 어떻게 신해량이 여기 있는 거지? 아…나 가이딩이 필요한 상황인 건가? 그래서 신해량이 필요해서, 그래서 헛것이 보이는 걸까…?


혹시나 싶어 신해량을 부르러 입을 열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숨이 막히고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왔다. 가쁘게 숨을 헐떡이는 사이 무언가가 얼굴을 감쌌다. 입술 위로 단단한 감촉이 닿았다. 촉촉하고 열기를 머금은 무언가가 파고들었다. 동시에 좀 더 깊은 곳으로 무언가가 파고드는 것 같은 감각이 일었다. 몸 곳곳으로 스며들던 한기 위로 기분 좋은 온기가 겹쳐져 서서히 덮어갔다. 숨을 쉬기가 한결 편해져 박무현은 저를 감싸는 온기를 더듬어 끌어안았다.




“응, 흐으, 아…”




가빠진 숨을 내쉴 사이를 잠깐 주고 신해량은 다시 입술을 겹쳤다. 불길한 감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각성의 마지막 단계에 다다라 온 몸이 새로운 힘과 자극에 적응하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박무현의 손이 그의 팔이며 등을 애타게 움켜쥐며 매달려왔다. 고통을 덜어줄, 지나치게 예민해지는 감각들을 잠재워줄 가이딩을 본능적으로 요구하는 센티넬의 몸부림이었다.


이렇게 되기 전에 가이딩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신해량은 빠르게 제 상의를 벗어 바닥에 던져버렸다. 박무현이 입고 있는 잠옷 상의의 단추를 차근차근 풀 여유가 없어 그는 거의 잡아뜯어내듯 벗겨 맨 피부끼리 닿도록 바짝 끌어안았다. 가이딩은 신체 접촉 면적이 넓을 수록, 밀접할 수록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입술 새로 흘러나오던 가쁜 숨이 차츰 가라앉아갔다. 신해량은 박무현의 입술에 다시 한 번 입술을 겹쳤다. 점막과 타액이 섞이면서 센티넬의 흐려져가는 의식이 다시 끌어올려졌다.




“선생님, 선생님. 들리십니까? 박무현 선생님.”




신해량은 초조함을 억누른 채 다시 박무현을 불렀다. 숨을 헉 들이쉬며 박무현이 설핏 눈을 떴다. 푸른색과 검정색의 눈이 허공을 헤매다 신해량을 올려봤다.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던 박무현의 눈꺼풀이 제 무게에 짓눌린듯 다시 가라앉았다.




“…ㅐ량씨.”




갈라지고 사그라드는 목소리가 이름의 끝자락만 겨우 흘려냈지만 신해량은 적이 안심했다. 의식은 있고 주변을 인식도 한다. 최악은 아니다. 하지만 박무현의 상태는 빈말로도 그리 좋지 못했다. 머리와 상체에서는 열이 맹렬하게 오르고 있는데 손과 발끝은 반대로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뿐만 아니라 맞닿은 피부를 통해 박무현이 느끼는 감각의 일부가 흘러들어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상성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각성 중이라 그러는 걸까. 다른 센티넬을 가이딩할 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박무현의 몸을 꼭 끌어안은 채 가이딩에 집중했지만 상태는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신해량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대로 접촉 가이딩만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밀접 가이딩을 시도할 것인가. …어느 쪽이 박무현이 더 잘 견딜 수 있을까. 




“…선생님.”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신해량은 바짝 말라가는 입술을 핥았다. 제 품안에서 늘어지는 박무현의 몸을 추슬러 바짝 끌어당긴 그는 박무현의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그보다, 들리기는 하는 걸까? 


대답처럼 박무현이 눈을 설핏 떠 신해량을 올려봤다. 더운 숨을 내쉬는 입술이 소리없이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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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해저기지 휴게실 명물 '벌칙의자' : 


싸운 사람들이 사이좋게 손을 잡고 앉는 의자. 김재희에 따르면 백애영과 서지혁이 단골 멤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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